11화
4장. 홀로 보내는 시간 속에서 성장한다(2)
첫 번째 뱀은 세 바퀴 반 똬리를 뜬 채 이곽의 회음혈에 확실히 자리를 잡았다.
‘첫 번째 고비를 넘은 건가?’
이곽이 안도의 한숨을 내쉬었다.
그는 몰랐지만 유가비전을 직접 익히려 했던 극히 소수의 무인들은 바로 이 첫 단계에서 좌절을 겪었다.
첫 번째 뱀을 만들어 내기 위해서는 무척이나 강인한 인내심과 지구력이 필요했다. 특히 회음혈이란 생소한 부위를 자극해 기운을 형성할 때까지는 절대 움직여서는 안 됐다.
천축의 수행자들은 그런 고행에 익숙했지만, 중원의 무인들은 그런 방식이 익숙하지 않았다. 며칠이야 참을 수 있다지만 이곽처럼 꼼짝도 하지 않고 석 달이란 시간을 인내하는 것은 거의 불가능했다.
이곽 역시 전신이 마비되어 누워 있지 않았다면 유가비전의 첫 번째 관문을 통과하지 못했을 것이다.
곰곰이 생각해 본 끝에 그런 사실을 깨달은 이곽은 천운이 자신을 버리지 않았음을 깨달았다.
그때였다.
갑자기 손끝이 저릿한 것이 느껴졌다.
이곽이 눈을 크게 치떴다. 이 현상이 무엇을 말하는지 본능적으로 알아차렸기 때문이다.
“감각이…… 돌아온 건가?”
말라비틀어진 고목나무처럼 생기를 잃었던 손끝에 조금씩 혈색이 돌고 있었다.
이곽이 손끝에 힘을 주었다. 그러자 손가락이 미세하게 까닥거렸다.
이곽이 그토록 원하고 고대하던 순간이었다.
비록 손끝에 국한되긴 했지만, 감각이 어느 정도 돌아온 이상 손목, 더 나아가 팔 전체를 움직이는 것도 꿈은 아니었다.
이곽이 멍하니 천장에 붙어 있는 유가비전을 바라봤다.
지난 석 달 동안 그가 맹목적으로 붙잡고 익혀 온 유가비전은 진짜였다.
‘일어날 수 있어.’
막연하게만 보이던 희망이 손에 잡힐 것 같았다.
이곽은 내친김에 두 번째 문을 여는 작업에 들어갔다.
‘움직여라.’
순간 회음혈에 똬리를 틀고 있던 뱀이 물고 있던 꼬리를 놓고 움직이기 시작했다.
목적지는 꼬리뼈 부근 두 번째 문이었다.
첫 번째 뱀이 문을 두들겼다.
쾅!
이곽의 몸 안에서 폭음이 터져 나왔다. 다른 사람들은 들을 수 없는 소리였다.
문은 굳건했다.
첫 번째 뱀이 다시 부딪쳤지만, 꿈쩍도 하지 않았다. 어림도 없다는 듯이 굳건하게 버티는 모습이 마치 철옹성 같았다.
이곽은 강제로 문을 열 수 없음을 깨달았다.
두 번째 문을 열기 위해서는 다른 방법이 필요했다.
이곽은 생각에 잠겼다.
다행히 그에게는 생각할 시간이 아주 많았다. 방해할 사람도 없었다.
시간의 흐름 따윈 신경 쓰지 않았다.
그사이 석이천이 두 번을 더 찾아왔지만, 이곽은 생각에 잠겨 있느라 입을 열지 못했다.
석이천은 다시 측은한 눈빛으로 이곽을 바라보다가 돌아갔다.
그때 이곽은 문득 깨달음을 얻었다.
‘어쩌면 내가 잘못 생각하고 있었던 건지도.’
이제까지 그는 통상의 운기 방법처럼 첫 번째 뱀을 이용해서 강제로 문을 여는 것만 생각했다. 하지만 유가비전은 중원이 아닌 천축의 공부, 그렇다면 생각하는 방향도 달리해야 했다.
이곽은 척추 끝 두 번째 문에 의념을 집중했다.
무언가 희미하게 느껴졌다.
‘두 번째 뱀.’
너무 미약해 정신을 집중하지 않았다면 절대 느끼지 못했을 터였다.
문은 굳게 닫혀 있었고, 두 번째 뱀은 미약했다.
이곽은 첫 번째 뱀을 움직였다. 이번에는 전처럼 무작정 두 번째 문을 향해 쇄도하지 않았다. 대신 부드럽게 어루만졌다.
문 너머에 있는 두 번째 뱀을 자극하는 것이다.
첫 번째 뱀의 부름에 두 번째 뱀이 호응해 움직였다. 이전과는 다른 선명한 움직임이었다.
지루한 시간이 흘러갔다. 그래도 이곽은 지치지 않았다.
두 번째 뱀의 호응이 점점 커졌기 때문이다.
자신의 몸 안에서 일어나는 변화가 즐거웠다.
단전이 아닌 곳에서 기운을 키울 수 있다는 사실이 믿기지 않았고, 그 효능이 자신의 예상을 뛰어넘음에 놀랐다.
한편으로는 왜 중원의 무인들이 이런 방식을 생각해 내지 못했는지 의아했다. 하지만 한참을 생각하니 쉬운 길을 놔두고 굳이 어려운 길을 갈 사람이 있을까 하는 의문이 들었다.
중원은 이미 중원만의 방식으로 무공을 만들어 냈다. 수많은 이들이 익히 알고 있는 방식이었다. 검증이 된 쉬운 길이 있는데 굳이 생소한 방식을 택할 이유가 없었다.
강호의 무인들 대부분은 유가술이 근골을 유연하고 튼튼하게 만드는 효능만 있다고 생각했지만, 직접 익힌 이곽은 그 이상의 무언가가 있을 거라 생각했다.
이곽이 그렇게 생각한 이유 중 하나는 유가비전을 만든 이가 바로 중원의 무인이었기 때문이다. 서문에서 그는 분명 중원의 무인이라고 밝혔다.
그 자신이 중원의 무공을 익혔었기에 천축의 유가술을 색다른 시선으로 바라보고 정수를 뽑아냈을 거라고 이곽은 추측했다.
‘누가 어떤 목적으로 유가비전을 만들었는지 모르지만, 그 정수를 반드시 익히고 말겠다.’
이곽이 입술을 질겅 깨물었다.
문득 광노야가 떠올랐다.
광야에서 천하를 압도하던 그 신위가 떠올랐다.
인간이 아닌 것 같은 강함.
그의 모습을 떠올리는 것만으로도 온몸에 소름이 돋았다.
광노야는 이곽에게 개가 아닌 늑대로 살라고 했다.
유가비전은 그에게 늑대의 어금니가 되어 줄 것이다.
이곽의 상념이 자극했는지 갑자기 두 번째 뱀이 크게 요동쳤다. 그의 난폭한 상념처럼 두 번째 뱀 역시 난폭했다.
순간 이곽은 조그만 깨달음을 얻었다.
첫 번째 뱀은 고요하며 묵직했고, 두 번째 뱀은 난폭했다. 우연히도 그 당시 이곽의 상념과 성질이 겹쳤다.
‘어쩌면 내 몸에 잠재한 뱀은 고유의 성격을 가졌는지 모른다.’
일단 생각이 거기에 미치자 망설일 이유가 없었다.
이곽은 난폭한 상념을 증폭시켰다. 그러자 두 번째 뱀이 더욱 난폭하게 날뛰었다. 그러자 첫 번째 뱀이 영향을 받았는지 호응해 난폭해졌다.
쩌저적!
무언가 부서지는 소리가 들렸다.
문이 부서지는 소리였다.
두 마리 뱀이 더욱 난폭하게 날뛰었다. 순간 그토록 굳건하던 문이 부서져 내렸다.
촤아아!
첫 번째 뱀이 문안으로 난입했다.
소용돌이를 타고 문으로 들어간 첫 번째 뱀이 두 번째 뱀과 만났다. 두 마리 뱀이 어지럽게 얽혔다.
마치 서로의 목덜미를 물을 것처럼 난폭하게 뒤엉키던 뱀이 어느 순간 서로의 꼬리를 물며 휘돌기 시작했다.
우웅!
두 마리 뱀이 서로를 희롱하고, 독려하고, 어우러졌다.
이곽의 입술이 떡 벌어졌다.
마치 수천 마리의 개미가 일제히 몸을 물어뜯는 듯한 고통과 함께 기이한 쾌감이 느껴졌기 때문이다.
“으음!”
이곽이 억지로 입술을 꽉 깨물었다.
인간의 감각이 극도로 예민해지면, 고통과 쾌감은 구별이 가지 않는다. 감각이 깨어나고 확장되면서 일어나는 필연적인 과정이었다.
***
“으이구! 낙이 없네. 낙이 없어.”
석이천이 양어깨를 문지르며 투덜거렸다.
하얀 입김이 허공에 흩어졌다. 여름이 엊그제 같았는데 계절은 벌써 겨울로 접어들고 있었다.
절로 어깨가 움츠러들고, 자꾸 옷깃을 여미게 됐다. 그래도 찬바람은 옷 사이를 사정없이 파고들었다.
석이천이 허리를 잔뜩 굽힌 채 종종걸음으로 향한 곳은 바로 외당 외딴곳에 있는 조그만 골방이었다.
“휴우!”
골방을 바라보는 석이천의 얼굴에 절로 그늘이 드리워졌다.
스스로 꽤나 낙천적인 사람이라 자부하는 석이천이었지만, 이곳에 올 때면 늘 마음이 무거웠다.
저 조그만 골방 안에 이곽이 있었다.
누구보다 싱그러운 젊음을 간직하고 있던 청년이 지금은 아예 폐인이 되어 움직이지도 못하고 있었다. 그 사실이 못내 그의 가슴을 무겁게 만들고 있었다.
처음엔 십삼 조원들도 그런 이곽을 위로하고 수발을 들어 줬지만, 이젠 무거운 분위기에 짓눌려 잘 찾아오지 않게 되었다.
긴병에 효자가 없다고 했다. 하물며 피 한 방울 섞이지 않은 타인을 간호하는 게 쉬울 리 없었다.
결국, 오랜 시간이 흐른 지금은 석이천만이 이곳을 찾아와 수발을 들어 줄 뿐이었다.
석이천이 손으로 굳은 얼굴을 이리저리 풀었다. 몇 번을 웃는 연습을 한 후 문 앞에서 심호흡했다. 그리고 일부러 밝은 목소리를 내며 문을 열었다.
“곽아, 형님 왔다. 어?”
기세 좋게 방문을 열던 석이천이 갑자기 눈을 부릅떴다. 믿지 못할 광경이 눈앞에 펼쳐져 있었기 때문이다.
“너, 너? 어떻게?”
너무 놀라운 광경에 석이천이 말을 잇지 못하고 더듬거렸다.
“오셨습니까? 형님!”
이곽이 자리에 앉아 그를 맞이하고 있었다.
석이천이 대답을 하지 못하고 눈만 끔뻑거렸다.
이곳에 올 때마다 항상 힘없이 누워 있는 이곽의 모습만 본 그였다. 많은 시간이 흘렀지만 이곽은 전혀 차도를 보이지 않았고, 그래서 이제는 어느 정도 체념을 한 상태였다.
나을 거면 벌써 나았어야 했다. 근 여섯 달이나 전신이 마비된 상태로 누워 있던 이곽이 이제 와 멀쩡히 낫기를 기대하는 것은 그야말로 어리석은 희망이라 생각했었다.
불과 얼마 전에 왔을 때만 하더라도 힘없이 늘어져 있던 이곽이었다. 그런 이곽이 며칠 만에 스스로의 힘으로 일어나 앉아 있으니 경악할 노릇이었다.
“너, 너 어떻게 된 거냐? 걸을 수 있는 거야?”
“아직은 상체밖에 움직이지 못합니다.”
“곽아!”
석이천이 이곽을 와락 껴안았다. 그런 그의 눈에 눈물이 핑 돌고 있었다.
천근 바위를 올려놓은 것처럼 답답했던 가슴이 뻥 뚫리고 있었다.
그는 이곽을 껴안은 채 두 손으로 상체를 더듬었다. 대나무처럼 삐쩍 마른 것은 여전했지만 생기가 느껴지고 있었다.
“다행이다, 정말 다행이야.”
“답답합니다, 형님.”
“어, 그래? 미안하다. 아직 완전히 나은 것이 아닐 텐데.”
그제야 석이천이 진정하며 이곽에게서 떨어졌다. 그런 그의 얼굴엔 의문의 빛이 떠올라 있었다.
“그런데 어떻게 나은 거냐? 모두가 포기했는데…….”
“모르겠습니다. 그냥 어느 순간 감각이 조금씩 돌아오더군요.”
“기적이 일어났구나.”
석이천이 감탄사를 토해 냈다.
만일 그가 고개를 들었다면 천장에 붙어 있는 유가비전을 보았을 것이다. 하지만 그의 시선은 이곽에게 고정되어 있어 미처 유가비전을 눈치채지 못하고 그저 기적이 일어났다고만 생각했다.
“정말 다행이다. 그렇지 않아도 당분간 찾아오지 못하게 되어 어떻게 하나 고민하고 있었는데.”
“무슨 일 있습니까?”
“사실은 이번에 외당 조직 전체가 개편된다. 우리 십삼 조도 개편돼서 뿔뿔이 흩어질 것 같다.”
“왜요?”
“위에서 정한 일인데 우리 같은 아랫것들이 이유를 어찌 알겠느냐?”
석이천의 표정이 어두웠다.
이제까지 별문제 없이 십삼 조에서 생활했던 석이천이었다. 오랫동안 같이 생활했기에 이제는 형제처럼 느껴졌다.
조직이 개편되면 뿔뿔이 흩어져 생활해야 하기에 석이천 역시 십삼 조에 남아 있을 수 있다고 장담할 수 없었다.
십삼 조를 떠나게 되면 아무래도 이곳 골방에 찾아오는 것이 힘들 수밖에 없었다. 그래서 걱정이었는데 이렇게 이곽이 혼자 앉아 있을 수 있게 되었으니 그나마 마음이 놓였다.
“외당 분위기가 좋지 않겠네요?”
“말이다 뿐이냐? 다들 죽을상이야. 그냥 억지로 버티고 있는 거지. 그래도 몇몇 놈들은 좋아하고 있다. 특히 전옥이. 그놈은 이번 기회에 외당을 벗어나고 싶어서 안달이다. 아주 대놓고 천이당과 다른 조직을 기웃거리는데 가관도 아니다.”
“음!”
“한 번도 안 찾아왔지? 그게 다 제 욕심 채우려고 하다 보니 그런 거다. 그래도 명색이 친군데 한 번도 안 찾아오다니. 그게 어디 인간이냐?”
석이천의 목소리가 절로 높아졌다.
그에 이곽이 씁쓸한 미소를 지었다.
어디 고전옥뿐일까?
지난 오 년 동안 알고 지내던 사람들 대부분이 얼굴 한 번 비추지 않았다. 이 조그만 골방은 이곽에게 감옥이기도 했지만, 진정한 친구를 구별하게 만드는 경계선이기도 했다.
경계선을 넘은 이는 석이천을 비롯한 몇 명뿐이었다.
이곽이 눈을 감았다.
서운할 만도 하건만 이상하게 그런 마음이 들지 않았다. 오히려 파문 하나 없는 수면처럼 마음이 고요한 것이 이상할 정도였다.
그것이 외로움에 익숙해졌기 때문인지, 아니면 유가비전을 익혔기 때문에 나타나는 현상인지 몰랐지만 아무래도 상관없었다.
이곽은 지금 그런 자신의 상태가 마음에 들었다.
이곽이 물었다.
“혹시 소천은 어떻게 되었는지 아십니까?”
“고향이 같다는 그 아가씨? 글쎄! 그 후론 한 번도 본 적이 없네. 한번 알아봐 줄까?”
“아닙니다. 잘 지내겠죠. 똑똑한 아이니까.”
“그래! 그럴 거야. 그리고 말인데…….”
갑자기 석이천이 말을 더듬거렸다. 그의 얼굴엔 난감한 기색이 역력했다.
“무슨 일입니까?”
“그게…….”
“후! 대연악관의 금 소저가 말이다.”
“…….”
“아무래도 다른 남자가 생긴 것 같다.”
순간 무거운 침묵이 방 안에 내려앉았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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